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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회고 - 호기심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자

2025년은 나에게 조금 특별했던 해라서 회고를 하면서 적어두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키워드별로 올해 경험했던 것들과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점들을 하나씩 정리해보려고 한다.


기록

올해를 처음 시작할 때 스스로와 한 약속이 하나 있었다. 다른 건 아무것도 안해도 괜찮으니 이것 하나만은 꼭 지키자 했던게 있는데 바로 다이어리 쓰기다. 처음 목표는 매일 쓰는 것이었지만, 내 성격상 매일 쓰는건 너무 어려운 목표였다. 그래서 기준을 조금 낮춰서 매일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12월까지 적어보는 걸로 목표를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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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때 이후로 무척 오랜만에 연말까지 꾸준히 다이어리를 썼고, 꽤 많은 페이지를 채웠다. 글을 쓰는 것이 일정과 목표를 꾸준히 관리하고 정리하는데에도, 쌓여있는 감정을 해소하는데에도 큰 도움이 되어서 올해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초반에는 힘든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쏟아내듯 일기를 썼다. 그런데 그렇게 쓰다 보니 오히려 감정이 더 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에는 의식적으로라도 좋았던 일, 감사했던 점, 긍정적인 장면 위주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바꿨고, 실제로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어서 이 방식이 나에게 더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이어리뿐만 아니라 옵시디언에도 기록을 본격적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단순한 노트 앱처럼 사용했지만, 올해는 폴더 구조를 정리하고 플러그인도 활용해 보며 나만의 지식 저장소를 만들어갔다. 경험이 쌓일수록 배운 것과 느낀 점이 많아지는데, 그것들을 저장해두고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창고가 생긴 느낌이라 든든하다.

예전에 블로그를 할 때는 공개해도 괜찮은 글들만 적어두었다면 옵시디언은 훨씬 솔직하고 개인적인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다. 내 목표나 커리어, 제태크, 사이드 프로젝트같이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조금씩이라도 기록을 해두면서 무엇을 했고, 무엇을 배웠는지를 계속 쌓아가고 있다. 대학생때부터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서 다행이다.

특히 읽은 책에 대해 새로 배운 점이나 읽고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해두기 시작했다. 읽고 나면 쉽게 까먹던 내용들이 내 언어로 정리되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더 자주 찾아보게 되고 기억에도 오래 남게된다. 올해 읽은 책중에 인상깊었던 건 시간되면 따로 글로 정리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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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힘을 많이 배우게 된 해였고, 올해 좋은 기반을 마련한 것 같아서 내년에도 완벽하지는 않아도 꾸준히 기록해나가려고 한다.

루틴

올해를 보내면서 ‘루틴 있는 삶’이 생각보다 나에게 꼭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원래 같은 일을 반복하면 지루함을 많이 느끼는 성격이라 루틴을 만들어도 잘 못지켰었다. 그런데 감정의 변화에 덜 흔들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서는 루틴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옵시디언의 Daily Note 기능을 활용해서 하루 루틴을 체크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뭐부터 해야하지?”를 고민하지 않고 바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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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아침에 시작한 영어 회화 수업이나, 주에 3번 가는 (가려고 노력하는) 복싱 같이 특정한 요일에 주기적으로 하는 루틴도 생겨서 좀 더 활기찬 하루를 보내게된 것 같다.

물론 다이어리도 그랬듯이 루틴도 매일 지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대략적인 삶의 틀이 생기니 잠시 흐트러져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준점이 생겼다. 루틴이라는게 계속 자신의 삶의 방식에 맞게 수정하고 발전시켜야하는 것 같아서 내년에도 나에게 더 잘 맞는 방식으로 맞춰나가볼 예정이다.

회사

올해는 업무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었던 해이다. 작년에 팀을 옮긴 이후로, 처음으로 하나의 모듈을 주도적으로 맡아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은 한명의 팀원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업무들을 잘 해내는 데 집중했다면, 미터링이라는 과금 집계 모듈을 맡게된 이후로는 이 모듈이 전체 시스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잘 동작하게 만들 수 있을지를 스스로 고민하고 개선하게 되었다. 이렇게 한 모듈이 비즈니스에서 가지는 역할과 목표를 이해하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보는 경험은 처음이라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전보다 더 큰 주체성과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업무적으로 많이 성장했던 한 해인 것 같다.

내가 속한 팀은 오브젝트 스토리지를 개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내가 맡은 미터링 모듈은 오브젝트 스토리지를 사용할 때의 저장량이나 API 호출 수 등을 집계하여서 과금 부서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오브젝트 스토리지를 직접적으로 만드는 일은 아니니까 “집계만 하는거면 할게 많이 없는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새로운 기능이 추가될때마다 어떻게 과금할 것인지 정의해야 하고, 과금 정책 자체에 대해서도 고도화를 해야 해서 생각보다 복잡하고 할 일이 많은 모듈이었다.

예를 들어서, 기존의 다른 스토리지에서 현재 우리가 만드는 오브젝트 스토리지로 데이터 마이그레이션 작업을 하면 해당 객체는 어떻게 과금처리를 해야할지를 고민해야한다. 또, 객체별로 실제 객체의 크기가 아닌 최소 저장할 수 있는 크기나 최소 보관해야하는 기간에 대한 정책을 과금에 도입하면 어떻게 설계하고 정합성을 검증할지 등을 생각해야한다. 처음 이 일을 맡았을 때보다 고민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는 것 같다.

다루는 영역이 커지다보니 자연스럽게 기획 내용을 정리하고 제안하기도 하고, 고도화 작업에 대한 설계를 진행하기도 하고, Spark를 컨테이너 환경에서 실행시키기 위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일까지 다양한 작업을 하게 되었다. 작년의 나와 비교하면 훨씬 넓은 범위의 업무를 다루게 되어 부담도 있었고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재밌게 일할 수 있었다.

사내 여러 서비스에서 오브젝트 스토리지를 사용하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서비스에서 활용될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사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올해 기술상 1위를 수상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한 해를 뿌듯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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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느라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미터링 모듈에 대한 경험이 쌓였다고 느껴진다. 내년에는 미터링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만드는 시스템 전반에서 더 넓은 범위로 개선점을 찾고, 더 주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해보고 싶다.

회복

평소에는 집에 있는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여행을 가면 왠지 모르게 부지런히 돌아다니게 된다. 올해는 그렇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다. 어쩌다 보니 일본을 자주 가게 되었는데, 가족들과 홋카이도에 다녀왔고 언니와는 나고야 여행을 했다. 국내로는 가족들과 남해와 속초를 다녀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혼자 떠난 도쿄 워케이션이었다. 회사에서 도쿄로 일주일간 워케이션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한 번 당첨되기도 어려운 기회에 두 번째로 선정되었다. 그럼에도 살짝 귀찮아서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도 아까우니까 가서 아무것도 안하더라도 일이라도 하고 오자하고 떠났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집중해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혼자 도쿄를 걸으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구경하고, 좋아하는 디저트도 이것저것 먹었다. 혼자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정말 내가 관심 있는 것들만 선택할 수 있고, 일정에 쫓기거나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자유롭다는 점인 것 같다. 도쿄를 혼자 걷다보니 새삼 영국 교환학생 갔을때 끝나고 혼자 에든버러를 여행한게 생각나면서 이렇게 혼자서도 여행을 잘 즐길 수 있는 사람이었지 느끼게 되었다.

도쿄가 특별한 여행지였다기보다는, 아무 생각이나 고민 없이 하루하루 세상을 구경하듯 지냈던 그 일주일의 시간이 유독 즐겁고 많이 회복되었다. (말차를 좋아하는데 도쿄갔을 때 맛있는 말차를 실컷 멋을 수 있어서 행복했던 걸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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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뿐만 아니라 나에게 맞는 회복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을 하고 있다. 아직 나만의 취미를 찾았다고 말하긴 어려워서, 일을 하다 머리가 과부하될 때마다 “나는 어떻게 쉬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쉬는 시간마저 효율적으로 보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오히려 취미를 찾기 더 어려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딱 열심히 일하고나서 한 시간 정도 무언가를 하면 머리가 맑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취미를 찾으려다보니 정말 마음이 가는 취미를 찾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올해는 좋아하는 밴드 콘서트도 가끔 가고, 사내 베이킹 동아리도 하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다. 뮤즈 콘서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었고, 베이킹을 하면서 여러가지 빵들을 실제로 어떻게 만드는지 배우는것도 재밌었다. 친구랑 발더스게이트도 같이 하면서 엔딩도 보고, 실크송을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아직 완벽한 ‘나만의 취미’를 찾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강박을 갖지 않고 이것저것 재미있어 보이는 걸 해보는 것 자체가 충분한 휴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에도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쉬다 보면, 또 자연스럽게 마음에 드는 무언가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회사 밖의 나

올해는 회사 밖에서도 다양한 도전과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개발자로 일하는게 적성에도 잘 맞고, 몰입해서 일하는 업무시간도 즐겁지만 내 최종 꿈이 개발을 잘하는 개발자가 되는 건 아닌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올해 회사 업무를 하면서도 그런걸 더 느꼈는데 내 강점은 기술적으로 깊게 파고드는 타입이라기보다는 도메인과 비즈니스를 잘 이해하고 전체 시스템에서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찾고 그것을 꼼꼼하게 구현하고 설계하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나의 장점과 관심사를 더 찾기 위해서 조금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회사 밖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찾아보고 싶었다.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수료식 & 간담회 참여

사실 수료식은 작년이긴 한데,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에서 Expert 활동을 한 후 수료식 패널 토크에 참여해달라는 연락을 받아서 짧게 연사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대기업 다니는 선배(?) 같은 포지션으로 참석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짧아서 많은 이야기는 못했지만 요즘 기업이 신입 개발자에게 기대하는 역량에 대해 내 나름의 생각을 전달해보려고 했다.

이 인연을 계기로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연수센터의 선임님께서 4월에 간담회에도 초대를 해주셨다. 과기부 차관님도 참석을 한 자리라 솔직히 떨려서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은 안나는데 다행히 기자님들이 말한 내용을 잘 정리해서 기사를 써주셨다.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느낀게 개발자라고 그냥 자신의 서비스를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개발자로 일하면서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업계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변할 것 같은지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과 생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기회가 있을때 좀 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전달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내 생각을 글과 말로 정리하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카오 임팩트 온소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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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지만 비전 프로를 사용한 프로젝트를 하나 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집중해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마침 내가 가진 기술을 활용해 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카카오 임팩트의 테크포임팩트 프로그램이 있어 지원하게 되었다. 내가 속한 팀은 농난청인을 위한 청각 재활 훈련 도구를 만드는 온소리랩이었고, 그중에서도 VR 기기를 활용한 훈련 도구를 개발하는 비전링고 팀에서 공간 음향을 활용한 청각 재활 훈련 도구를 만들었다. ‘내가 언제 또 비전 프로를 직접 만져볼까’ 하는 마음으로 선택했는데, 유니티로 이런 형태의 서비스를 만드는 경험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역시 팀으로 무언가를 만들면 혼자 할 때보다 완성도도 높아지고, 결과가 가지는 파급력도 커진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특히 실제 인공와우 수술을 받으신 펠로우 분께서 사용자 관점의 피드백을 자주 주셨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사이트를 많이 얻었다. 늘 ‘실제 사용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이번에는 그 중요성을 몸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앞으로 또 유니티나 XR 개발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영역이라도 결국은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경험이었다.

그 외 활동

블로그에 구체적으로 적을 수는 없지만, 올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은 활동도 하나 있었다. 활동을 할 때마다 내가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 기록하는 편인데, 이 활동은 유독 적어둔 내용이 많았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회사 일 말고도 이런 새로운 영역이 있구나’, ‘여기서 이렇게 더 확장해볼 수도 있겠구나’ 같은 생각을 정말 많이 하게 되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는 걸 느끼면서 자존감도 많이 올라갔다.

이 활동을 통해 연말 파티 같은 자리에도 참여하게 되었는데,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니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모두 각자만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서 더 흥미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자극이 되었다.

내가 가진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경험은 역시 특별하다. 단순히 나만 만족하는 삶을 넘어서, 크지는 않더라도 세상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60%만 해서 세상에 내놓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이 경험 덕분이다.

돌아보면 올해 한 활동들이 모두 개발자라는 뿌리를 가지고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 본 것들이었다. 나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한 해였고, 내년에는 이 중에서 특히 재미있고 의미 있었던 영역 위주로 더 집중해서 확장해보고 싶다.

다정함

무언가를 했다는 정량적인 목표는 아니지만 올해 좀 더 신경쓰고 싶었던 부분은 좀 더 내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남들에게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감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단단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올해 읽은 『감정이라는 무기』라는 책이 도움이 되었다. 감정을 느꼈을 때 바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마주하고 한 걸음 비껴난 뒤, 내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를 고민하라는 내용이 특히 인상 깊었다. 부정적인 감정조차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해주려는 신호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차분해보이고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아보인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사실은 갈등이 생기는게 싫어서 감정을 억누르려고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감정을 쌓아두다보면 결국에는 어긋난 방식으로 그걸 표출하게 된다. 이런 행동패턴을 조금 바꿔보려고 미리미리 표현하는 습관을 좀 들이려고 노력했다. 예전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연락을 먼저 해보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느낀 불편함을 조심스럽게 말로 꺼내보기도 했다. 편지를 써본 적도 있다. 아직도 쉽지는 않고 잘못 표현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끼리의 대화만 보더라도 이전보다는 나아진 것 같다. ‘왜 저 사람은 안 바뀌지’라고 생각하기보다, 그냥 내가 먼저 조금 더 다정하게 사람들을 대해보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기

대학을 입학하고, 졸업하고, 취업을 할 때까지 그저 눈앞의 정해진 프로그램을 따라가려고 노력했을 뿐 사실 특별한 삶의 목표가 없었던 것 같다. 다행히도 내가 세운 목표는 비교적 잘 달성하는 편이어서 나름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었지만,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2년쯤 지나면서부터 약간의 권태로움과 막연한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독립을 하게 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 과정에서 부모님이나 세상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동안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내 삶의 목표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어딘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들 알듯이 삶의 의미라는게 그냥 생각한다고 튀어나오는 건 아니다.

그래서 올해는 ‘나만의 의미’를 찾아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며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1년을 살아보고 나니, 지금의 나는 1년 전의 나보다 꽤 마음에 든다. 올해 초만 해도 삶의 방향에 대한 나침반이 전혀 없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2026년의 만다라트를 큰 고민 없이 채울 수 있을 정도로 나만의 방향성이 생겼다. 미래에 대해 큰 기대감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조금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건 결국 호기심이 삶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사실이다. 내 세상에 관심을 갖고 눈을 반짝일수록, 내 삶은 더 풍족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수동적인 태도를 조금씩 내려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년에는 이 흐름을 이어가되, 너무 진지해지지 않고(혼자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점점 진지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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